휴대용 음향기기는 거치형보다 음질이 떨어진다. 이는 누구나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다. 휴대용으로 만들려다 보면 부피와 무게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치형 시스템보다 음질적 제한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휴대용이기 때문에 음질에 있어서는 소비자들도 어느정도 관대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어찌보면 음질적인 심각한 결함 - 예를 들면 화이트 노이즈 같은 것이 없는 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용 음향기기에서 거치형 급의 음질을 듣고 싶어하는 매니아층은 꼭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매니아층을 위한 제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시장 전체로 보면 그러한 소비자층은 극히 일부분인데 비해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노력은 일반 컨슈머 제품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이다. 생산자 입장에선 그렇게 채산성이 낮은 제품에 쉽게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소수 매니아층을 위한 제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리뷰에서 다룰 Colorfly社의 C4 Pro가 바로 그런 류의 제품이다. Colorfly의 그간의 행보를 보았을 때도 C3 Hi-fi라는 제품부터 어느정도 자사의 휴대용 MP3P에 대한 고사양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이 C4 Pro에 들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하이파이 오디오파일 지향의 제품으로 완성시켰다.

 

제품을 처음 접하는 순간 우선 그 외관에서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다. 앤틱한 메탈 마감과 원목 하우징, 그리고 후면 하우징 한가운데 큼직하게 새겨져 있는 자사의 클래식한 로고까지. 누가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니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거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조작부의 아날로그 볼륨 조절기이다. 요즘은 공간 절약과 배터리 절약 차원에서 디지털 볼륨은 휴대용 음향기기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C4 Pro의 전면에는 커다란 슬라이드식 아날로그 볼륨 조절기가 자리하고 있다. 아날로그 볼륨 조절 방식은 휴대용이라는 면에선 여러모로 불리하지만 볼륨 변화의 즉답성이라는 면에선 디지털 볼륨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휴대성보다는 음질에 확실하게 주력하겠다는 제품 개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입력버튼의 구성은 기본적으로는 흔히 보는 4방향키에 더해 메뉴버튼과 뒤로버튼이 따로 있는 구성인데, 여기에 샘플링레이트와 EQ 프리셋을 조절할 수 있는 물리키를 각각 따로 할당하였다. 다른 기능키들은 없는데 그런 음질 관련 키들을 따로 제공한다는 면에서 볼륨과 마찬가지로 제품의 방향성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입출력 단자의 구성도 재미있는데, SPDIF 동축 입/출력 및 3.5mm/6.3mm 스테레오 폰잭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SPDIF의 경우 C4 Pro를 DDC나 DAC으로 쓸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구성이며, 스테레오 폰잭의 경우 최대 620mV의 출력을 지원하는 5.5mm 미니 스테레오 잭과 함께 300옴 이상의 고임피던스 헤드폰을 위해 최대 2V 출력의 6.3mm 스테레오 폰잭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입출력 구성이 마치 거치형 DAC+헤드폰앰프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PC와의 연결을 위해서는 미니 USB 단자가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과 충전 어댑터가 기본 제공되므로, 원한다면 DDC/DAC 기능의 경우 거치형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체에 기본적으로 내장된 메모리는 32GB이고 여기에 더해 사용자가 추가로 용량을 확장할 수 있도록 micro SD카드 슬롯을 제공하고 있어, 주로 고용량 음원을 사용하게 될 C4 Pro 사용자들의 사용패턴에 잘 부합한다.

 

재생 가능한 음원의 종류는 WAV, FLAC, APE, OGG, MP3로 무손실 포멧을 3가지나 지원하고 있다. 재생 가능한 샘플링 스펙도 24/192KHz까지로 고음질 음원의 재생이 가능하며, 샘플링 레이트가 낮은 음원의 경우 C4 Pro 자체적으로 최대 192KHz까지 업샘플링이 가능하다. 이 업샘플링 기능은 DDC/DAC 모드로 사용할 때도 사용 가능하므로 사실상 거치형 DAC급의 성능이다.

 

하드웨어적으로는 고성능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나 볼 수 있는 SNR 120dB급의 CS4398 DAC IC부터 시작해서, 샘플링 레이트 컨버젼을 위한 CS8422, 아날로그 증폭을 위한 AD823이 탑재되어 있다. 하나같이 고성능으로 유명한 소자들이다. 여기에 더해 TXCO 고정밀 오실레이터와 APLS제 슬라이더 볼륨 등 다른 주요 부품들에도 착실히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고사양 부품들의 탑재를 바탕으로, 휴대가 가능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SNR 108dB, THD 0.0022%의 스펙에 이르고 있다. 이정도의 스펙이라면 다른 휴대용 MP3P들이 도저히 따라오기 힘든 정도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소리 역시 휴대용 제품임을 감안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리뷰를 통해 필자가 누차 강조하는, 하이파이 타겟 음향기기의 필수 조건인 중립적인 주파수응답은 기본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고성능 DAC IC를 바탕으로 실현되는, 귀로 도저히 감지가 불가능한 노이즈레벨은 소편성의 조용한 음악에서의 정숙성을 한층 더 고조시켜 준다. 노이즈 플로어가 내려가는 만큼 확보되는 폭넓은 다이나믹레인지는 한편으로는 대편성 음악에서 절정 부분에 다다랐을 때의 웅장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바탕이 된다.

 

헤드폰 출력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3.5mm 단자를 사용하는 것이 크로스토크 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물론 6.3mm 단자를 사용할 경우 크로스토크 레벨이 약간 상승하는 대신 출력도 두배 이상 향상되는 만큼 구동력에서 잇점이 있으므로, 사용하는 헤드폰의 음량 확보 여하 및 본인의 음질적 취향에 맞춰 선택해서 사용하면 될 것이다. 고성능 헤드폰들 중에는 보통 임피던스가 높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헤드폰들을 휴대용 음향기기에서 사용할 때에는 외장앰프가 필수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C4 Pro는 외장앰프에 의존할 필요 없이 고임피던스 헤드폰들을 무리없이 구동시켜 주므로, 기존에 휴대용 앰프를 따로 사용하던 유저들에게는 휴대성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앞서 물리적 인터페이스에 대해 언급할 때 EQ 프리셋을 바로 조절할 수 있는 키가 따로 있다고 언급하였었는데, C4 Pro는 기본적으로 5가지의 음악 장르별 EQ 프리셋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C4 Pro를 사용할 정도의 하이파이 클래스 유저라면 프리셋 EQ에 그렇게 의존하는 유저는 많지 않을 것이다. EQ를 프리셋 형태가 아닌 정밀하게 조절 가능한 커스텀 EQ 형태로 제공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제품이므로 추후 개선을 한번 기대해 본다.

 

업샘플링 기능의 경우에도 확실히 음질적 이득이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48KHz 음원을 C4 Pro에서 4배 업샘플링했을 때 네이티브 192KHz 음원의 소리에 준 할 정도로 좋은 상황까지도 있었다. 그만큼 자체적인 업샘플링 기능이 매우 충실한 제품이므로 음질적 열화와 같은 우려 없이 자유롭게 업샘플링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디지털 필터의 어테뉴에이션 컨트롤 및 위상 반전 기능까지 착실하게 메뉴로 탑재하고 있다.

 

C4 Pro의 경우 2.4인치의 작은 액정, 우수하다고는 말하기 힘든 메뉴 조작감, 큰 부피와 짧은 재생시간 같은 면에선 분명 휴대용 기기로서는 다소 떨어지는 제품이다. 휴대용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카오디오와 같이 아웃도어지만 거치형에 준하는 환경에서의 메인 소스기기로서의 활용, 혹은 실내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감상을 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가지고 다니면서 음악감상을 한다기 보다는 가지고 가서 음악감상을 한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딱 맞을 것이다. C4 Pro를 가지고 가기만 하면 그 곳이 어디든지 간에 거치형 시스템 수준의 하이파이 환경이 바로 준비가 된다. MP3P의 기능이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흡수당하고 있는 요즘 같은 시장의 상황에서 다른 어느 제품과도 차별화되는 컨셉과 성능이 바로 C4 Pro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